나시혼이 대세 된 일본 웨딩 시장…호화 예식장 폐업 속 새 생존 전략 고심
나시혼이 대세 된 일본 웨딩 시장…호화 예식장 폐업 속 새 생존 전략 고심

코로나19 팬데믹의 직격탄과 함께 젊은 세대의 결혼관 변화가 맞물리면서 일본 웨딩업계가 심각한 침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새로운 생존 전략을 고심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성대하고 까다로운 예식 문화는 사라지고, 혼인신고(입적)만 한 채 예식을 생략하는 '나시혼(式なし婚)'이나 사진 촬영으로 식을 대신하는 '포토혼(フォト婚)' 등이 대세로 자리 잡으며 전통적인 예식장들이 존폐 위기에 내몰리고 있습니다.
이는 인구 감소를 넘어선 사회 구조적 변화 속에서 결혼 문화 자체가 전환기를 맞이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방 예식장 존폐 위기…'매출 절반'에 문 닫는 곳 속출
최근 요미우리신문은 지방 결혼식장의 존폐 위기를 거론하며 일본 웨딩업계의 난맥상을 지적했습니다.
매체에 따르면 기후(岐阜)현의 결혼식장 '일 쿠오레'는 2014년 문을 연 이후 약 500쌍의 부부를 배출한 지역 명소였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이달 말 폐업을 결정했습니다.
이 회사 대표는 "코로나 이전까지는 경영이 순조로웠는데 최근 수익을 낼 수 있는 규모의 예식이 절반으로 줄었다"며 "멀쩡한 예식장의 문을 닫게 돼 안타깝다"고 토로했습니다.
경영난 속에서 이곳 직원들은 생계를 위해 계열 장례식장 업무를 돕는 일까지 벌어졌다고 합니다.
혼인 건수 절반 이하 급감…예식 시장 80% 수준으로 쪼그라들어
위기는 통계 수치로도 명확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일본 후생노동성이 집계한 2024년 혼인 건수는 48만5092쌍으로, 혼인이 정점에 달했던 1972년 109만9984쌍과 비교하면 절반 이하로 곤두박질쳤습니다.
식을 올리는 비율 자체 역시 급감했습니다. 일본 제국데이터뱅크(TDB) 분석에 따르면 2024년 일본 예식장 시장 규모는 4881억 엔(약 4조5000억 원)으로 집계되었는데, 이는 코로나19 이전인 2018년 6163억 엔(약 5조9000억 원) 수준의 약 80%에 불과합니다.
팬데믹 종료 후 일상이 회복되었음에도 웨딩 시장만큼은 예전 규모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실제 TDB는 결혼식장 운영 기업을 조사한 결과, 2023년도 대상 기업 중 35.6%가 적자였으며 그 다음 해에도 코로나 이전 수준으로 완전히 돌아오지 못했다고 분석했습니다.
도산과 폐업도 잇따르고 있습니다. 도쿄상공리서치(TSR)는 2024년 웨딩산업에서 도산이 13건, 휴·폐업이 37건에 달했다고 밝혔습니다.
'코스파', '타이파' 중시 문화…결혼식은 '낭비' 인식 확산
요미우리신문은 이러한 불황이 인구 감소뿐 아니라 구조적 변화에서 기인한다고 분석합니다.
1980년대 거품경제 시기에는 곤돌라 입장과 거대한 케이크 커팅 등 호화로운 '하데혼'이 유행했지만, 거품경제가 무너진 후에는 가까운 지인만 초대하는 소박한 '지미혼'과 집에서 식을 올리는 '앳홈(at-home) 웨딩'이 등장했습니다.
이후 장기 불황, 고물가, 코로나19를 거친 젊은 층 사이에서는 아예 식을 치르지 않는 '나시혼'이 대세가 된 것입니다.
'비용 대비 효과'(코스파·코스트 퍼포먼스의 줄임말)와 '시간 대비 효과'(타이파·타임 퍼포먼스의 줄임말)를 각각 따지는 문화가 젊은 세대에서 퍼진 점도 주목할 만한 대목입니다.
예식에 수백만 엔을 들일 바에 그 비용을 신혼여행이나 주거비용으로 돌리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는 의미입니다.
사카이 유이치로 게이오(慶應義塾)대 가족사회학 교수는 요미우리신문에 “경제적 합리성을 우선하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남자가 벌고 여자가 내조한다’는 전통적 가부장제 연출이 포함된 기존 결혼식이 외면 받고 있다”며 “일본의 결혼식 문화는 전환기를 맞이했다”고 분석했습니다.
위기의 웨딩 업계,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모색
생존 위기에 몰린 웨딩 업체들은 사업 모델을 뜯어고치고 있습니다. 미에현의 한 예식장은 300명을 수용하는 대형 연회장을 쪼개 40명 규모의 소규모 카페 겸 행사장으로 리모델링했습니다.
고베(神戶)시 한 예식장의 경우 비혼 여성을 위한 솔로 웨딩 촬영 상품을 내놨다고 합니다.
이는 '결혼'이라는 틀에 갇히지 않고, 인생의 중요한 순간을 기념하고 싶은 개인의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시도로 보입니다.
일본 웨딩업계의 침체는 단순히 경제적 어려움을 넘어선 사회적, 문화적 변화의 복합적인 결과입니다.
전통적인 결혼식의 의미와 형식이 젊은 세대의 가치관과 경제 상황에 맞춰 진화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업계도 과거의 영광에만 머무르지 않고 혁신적인 변화를 모색하고 있습니다.